하녀 (The housemaid, 2010)


하녀
감독 임상수 (2010 / 한국)
출연 전도연, 이정재, 윤여정, 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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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몇 달간 극장가에는 나를 유혹할만한 신작이 개봉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고 내 시간에 맞는 영화를 보곤 했다. 이러한 문화활동은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잠깐의 휴식을 안겨주기에는 충분하였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 느껴지는 아쉬움이 여러번 반복되다보니 영화관에 대한 기대가 점차 줄어갔다. 이번 영화 '하녀'는 지금껏 나를 실망시킨 영화들과는 차별된 뭔가가 있었다. 본 포스팅에서는 느낀점을 간략히 다루고자 한다.


사랑, 그게 뭐임?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은 아주 부유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큰 미술관 속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웅장한 집에 살며, 하녀를 부리고 있다. 그 집의 부부는 딸아이 하나를 두고 있고, 현재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다. 하지만 둘은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 흔히 돈 많은 부유층집의 결혼 문화라고 알려져있듯이 둘은 두 집안의 경제력, 그리고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기준으로 결혼하였다. 이 둘 사이에 하녀 은이(전도연)가 개입되고 그들의 얇은 관계는 알알이 깨졌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하고 살아오면서 본인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는 살아본 적이 전혀 없는 남편 훈(이정재)이 은이를 사랑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단순히 육체적 욕망을 채우고자 접촉한 것일 뿐. 은이의 감정은 어떠한가? 별장으로 여행을 갔던 날, 처음 훈이 은이를 탐하는 장면에서 은이는 왜 쉽게 허락한 것인지 의아하다. 은이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는, 본인보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한 동경의 감정이 증폭된 무언가가 은이의 가슴속에 자리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사실 아직도 정확히 어떤 감정이 은이의 행동을 야기했는지 모르겠고, 영화를 보던 순간에도 그 장면에서 '헉! 왜?!' 하고 놀랬었다. 한편, 영화속에서 착한 마음과 바른 눈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은 '훈'과 '해라'의 딸, '나미'뿐이었다. 솔직하고 거짓없는 눈은 나에게 아직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희망을 주고 우리의 양심을 채찍질해주지만, 그 딸이 크면 '해라'와 '훈'과 같은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이 사회가 정말 무섭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배우들의 연기력


 이 영화는 등장인물이 매우 적다. 대부분의 배경이 집으로 설정되어 있고 부부, 딸, 장모, 하녀 둘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타영화에 비해 본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력은 영화의 퀄리티에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이정재는 세상 위에 군림하는 왕같은 부유층 남자의 역할을 맡았는데, 무작정 누르는 것이 아니라 '예의'로 포장한 외형을 띄면서도 밟아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특유의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로 잘 표현하였다. 서우는 드라마 '신데렐라언니'를 통해 처음 접한 배우인데, 드라마에서는 순진무구청순한 역할을 맡아서 여리고 여린 이미지였지만, 본 영화에서는 그러한 서우는 온데간데 없고 차갑고 소유욕 강한 그리고 악날한 여인의 역할을 맡았다. 영화속에서 만난 서우의 모습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전혀 이질감은 없었다. 그만큼 서우는 본인의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다음날 브라운관에서 만난 서우는 역시나 청순했다. 그 역시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큰하녀 역할을 맡은 윤여정은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로 극 내내 편안함을 주었다. 담배피는 장면, '아더매치'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본인의 직업이, 더 나아가서는 세상에 굽신거리며 살아온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경멸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더러운 사회에 순응하며, 자신만의 대나무숲에서 짜증난다고 소리치는 이러한 모습이 가장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전도연은 훌륭한 배우답게 본연의 역을 충분히 소화해내었다. 영화속에서 어린 딸과 '은이'만이 순수한 인간인데, 전도연은 순수한, 때묻지 않은 표정을 보이며 다소 어리숙한 모습까지 자유자재로 표현하였다. 한편, 침대위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감정을 표현하였으며, 집에서 나간 뒤 복수를 위해 다시 돌아온 장면에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증오로 가득찬 '은이'를 훌륭히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아역을 맡은 안서현은 너무나 귀여웠다. ^^


그런데, 과연 '은이'의 분신자살은 최선의 선택이었을까?